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성근/야구계 인맥 (문단 편집) === 좋은 관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성근 제자 회동.jpg|width=100%]]}}} || '''의외일지도 모르겠지만, 개같이 굴린 선수들 대부분.'''[* 의외라고 라기보다는 여기 선수들은 대다수가 1군에서 많은 경기를 뛰게 된 선수들이다. 실제로 [[장성호]]도 "야구선수들 기준에서 명장은 자기를 굴려주고 많이 기용해주는 감독"이라며 이야기 할 정도로 야구선수들은 감독의 지시로 본인이 1군 경기에 많이 나온다면 구단에서도 필수 전력으로써 선수생활 연장에도 도움이 되고 일단 연봉도 오르기 때문에 김성근처럼 개같이 굴려서 1군에만 기용해준다면 그들에게는 김성근은 정말 고마운 스승이자 명감독인셈이다.] [[박철순]], [[양준혁]], [[이승엽]], [[라뱅]],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 [[박경완]], [[김재현(1975)|김재현]], [[최동수]], [[이진영]], [[정대현(1978)|정대현]], [[윤재국]],[* 김성근 감독은 2009년 윤재국이 부상 재발로 은퇴했을 때 크게 아쉬워하기도 했다. 쌍방울 시절부터 쭉 봐 온 선수였다.] [[류택현]], [[신윤호(1975)|신윤호]], [[임창용]], [[배영수]],[* 2000년 김성근 감독이 2군 감독으로 있으면서 3억 신인인 배영수의 투구폼을 교정해 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15시즌 중 감독의 강판지시에 불응, 불펜에서 시위를 벌이다 선발자리를 박탈당하고 후반기에는 패전처리조로서만 등판하다 ~~본인이 원하는 30경기를 넘게 뛰고~~ 시즌을 마무리하는 바람에 지금도 존경의사를 표할지는 미지수. 그런데 시즌이 끝나고 수술을 하기로 결심한 이야기가 실린 기사에서 김성근 감독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인터뷰를 한 것을 보면 여전히 존경하고 있는 것 같다. 2022년 롯데 코치 부임직후 [[이영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제서야 김성근 감독을 이해하고 죄송한다고 언급했다.] [[정근우]], [[정우람]], [[송신영]], [[심수창]], [[송창식(야구선수)|송창식]], [[김회성]], [[김광현]], [[최정]], [[정상호]], [[이대호]], [[박용택]], [[김태균]] 등이 김성근 감독을 존경하는 선수로 꼽힌다. [[송은범]]은 이러한 감독의 제자 사랑을 이용해서 [[KBO FA제도|FA]]대박을 터뜨리며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였고,[* 다만, 송은범은 17시즌에는 김성근에 대해서 불편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정적으로 송은범의 기량이 만개한 것은 정민태와 송진우가 투심 패스트볼을 전수해주고 투구 폼을 잡아준 18시즌이었다.] 특히 [[정우람]]은 김성근에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한 적이 있으며, 서산에서 유병민 기자에게 "근우 형은 감독님이 찾아왔지만 난 내 발로 감독님 찾아왔다" 라는 말을 전하며 감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고양 원더스]] 출신의 [[송주호]]와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출신의 [[권용관]]이 [[한화 이글스]]에서 기량이 부족함에도 경쟁선수보다 많은 출장기회를 받는 것도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감독의 제자사랑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SK 왕조 시절 주축 멤버였던 [[박정권]], [[김강민]], [[채병용]], [[박재상]], [[조동화]], [[최정]], [[김광현]], [[이승호(1981)|이승호]], [[정근우]]는 모두 김성근 감독에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했으며, 김성근 감독을 존경하는 선수들로 유명하다. 특히 최정은 김성근 감독이 야인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직접 손 편지를 작성해서 전달할 정도로 각별하며, 김성근 감독이 한화 감독, 이만수 감독이 소속팀 감독으로 있던 시기에 김광현과 함께 결혼식을 올리게 됐음에도 두 사람 모두 김성근 감독에게 주례를 부탁했다. 둘이 하루차 간격으로 결혼식을 올렸으며, 최정의 결혼식은 김성근 감독의 생일날짜에 맞춰서 올리게 됐다. [[정상호]]는 김성근 감독 재임 시절 2009 시즌을 제외하고는 주전 포수로 뛴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김성근을 존경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으며, 이만수 감독이 소속팀 감독으로 있던 시기에도 김성근 감독에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한 바 있다. 이 외에도 SK 시절의 대다수 멤버들은 SK를 떠난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김성근 감독과 연락하고 있으며, 비시즌 기간에는 현역 선수들을 제외한 왕조 시절 선수들이 김성근 감독을 모시고 같이 회동을 하고 있다. [[박철순]]은 한참 부상에 시달리고 설상가상으로 이혼할때 전 부인의 빚까지 떠안았고 이걸로 빚쟁이들한테 시달리자 김성근 감독이 박철순을 은행에 데려가 '''직접 보증을 서면서''' 2천만원을 대출받게하고 자기통장에서 2천만원을 박철순 통장에 보내면서 빚을 갚게 했다.[* 다들 알겠지만 대출 보증은 가족도 절대 안서는게 철칙이다. 또한 대졸 초임자 월급 20만원시대에 저 2천만원을 그냥 보내준게 ~~어째 의외의 상황에서 대인배 기질을 보여준다.~~] [[충암고등학교 야구부|충암고]] 시절에는 제자의 타격을 봐 주다가 배트에 맞아서 이가 부러졌는데 제자가 부담을 가질까봐 재치를 발휘하여 '내가 집중을 안해서 이렇게 부상당했으니 너희도 조심해라'라고 말하며 오히려 부상으로 가르침을 주었다. 야인이었을 때도 전국 각지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인스트럭터 일을 하였고 한때는 [[박찬호]]와 [[김병현]]을 일대일로 한 번 지도한 적도 있다. 그러면서, 메이저리거인 둘을 본인이 길러냈다고 떠들고 다닌다. '''물론 박찬호와 김병현 건은 코칭 기간을 따지면 아주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애초에 둘 다 중시하는 플레이 스타일부터가 김성근의 코칭과는 다르다.] 애초에 본인이 길러냈다고까지는 말을 안 하는 건 둘째치고, 오히려 박찬호는 본인이 김성근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사이다. 김병현은 코칭의 횟수가 적지만 박찬호는 꽤 많은 코칭을 받았다. 텍사스 시절 부진했던 때 이런저런 방도를 찾다 당시 한국에서 투수 코칭의 일인자로 여겨지던 김성근과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직접 자신의 피칭 비디오를 보내며 폼을 지적해 달라는 요청을 해서 비디오를 주고받던 사이였는데, 이후로는 아예 비시즌에 직접 만나서 폼을 다듬어 주기도 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거의 매년 이렇게 만나서 폼을 교정받았고 실제로 어느 정도 효과를 봐서 방어율은 높지만 샌디에이고에서 간만에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기도 했고, 불펜으로서 부활했기에 박찬호는 김성근에게 꽤 신뢰를 지닌 것으로 보이며 박찬호가 메이저를 떠나서 일본, 한화를 가서까지도 인연이 유지되었으며 현재까지 박찬호와 김성근은 상당히 우호적이다. 사실 박찬호가 도움을 구할 만한 국내 야구지도자는 김성근 외에는 딱히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당시 메이저리거인 박찬호의 솜씨를 따라올 한국인 야구지도자는 비록 메이저는 아니라도 당시 마린스 코치로서 일본프로야구 지도자 경험이 있는 김성근이나 주니치에서 선수생활을 했으며 투수코치 연수 경험이 있는 선동열 정도였다. 그러나 선동열은 박찬호와 현역 생활 시기가 겹친 초보 지도자이기도 했고, 대표적인 친 김응용파 야구인이었는데 박찬호는 김응용 파벌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유명한 사실이라 거르고 거르면 김성근밖에 없기도 했다. [[LG 트윈스]] 시절에는 [[이병규(1974)|이병규]]가 아주 호되게 혼나서 '넌 야구를 할 자격 없으니 집으로 가버려라!'라는 말까지 들었으나 그 이후로 김성근에게 깍듯하며 멀리서도 보고 달려와서 인사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병규가 김성근 감독을 보고 달려와 백허그를 한다고. 혹사 논란이 있는 [[이동현(1983)|이동현]] 또한 인터뷰에서 수술 후 가장 걱정을 많이 해준 분이라며 고마움을 밝혔다. [[http://news.nate.com/view/20101112n16459?mid=s1001&isq=473|LG 이동현 ① "김성근 감독님께 고마운 마음 뿐"]][* 일반적으로 선수들은 감독에게 혹사당해서 원망스럽다는 식으로 인터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기용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혹사란 기본적으로 시합에 많이 내보내는 것인데 운동선수는 기본적으로 당장 죽을 것 같지 않은 한 경기를 하나라도 더 많이 뛰고 싶어하며, 또한 시합에 많이 내보낸다는 것은 자신을 그만큼 신뢰한다는 것이라 나를 신뢰하고 기회를 많이 주는 사람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금전적으로도 선수생명은 짧고, 또 언제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당장 시합을 많이 나가게 되면 내년도 연봉은 확 뛰어오른다. 날 믿어주고, 팀내 입지를 올려주고 스타가 되게 해 주며 돈도 많이 벌게 해 주는 것이다. 선수 입장에선 싫을 수가 없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몸을 망가뜨려 선수 커리어에 악영향을 끼치겠지만, FA까지 몇년이나 남았는데 그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을지 아무도 모른다. 미래가 불확실한 만큼 지금 당장의 기용은 고마울 수밖에 없다.] 이후 2019년 이동현 은퇴를 선언한뒤 얼마후 언론 인터뷰에서 김성근 감독에 대해 말한걸 반드시 써달라고 얘기했는데 그 내용이 >“김성근 감독님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2002년 불펜 투수로 124.2이닝을 소화하고, 2004년부터 세 차례의 팔꿈치 수술을 받은 걸 김성근 감독님의 혹사 때문이라고 보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2002년 선수 이동현을 만들어준 분이 김성근 감독님이셨어요. 김성근 감독님이 이끌어주셨기 때문에 2002년 8승 3패 6홀드 7세이브 평균자책점 2.67로 한국시리즈를 경험할 수 있었고요. 제 팔꿈치는 고등학교 때부터 많이 던졌던 부분이 누적돼 나타났을 뿐입니다. 만약 2002년에 김성근 감독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을까요? 감독님 덕분에 이겨내는 법을 배웠어요. 감독님 덕분에 투수의 자존심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고요. 이번 인터뷰로 더 이상 김성근 감독님의 혹사로 이동현이 망가졌다는 이야기가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전 항상, 지금까지, 아니 영원히 감독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 겁니다. 제 은퇴식에 모셔 잠실야구장에서 감독님과 포옹 한 번 하고 싶은데, 글쎄요. 그게 가능한 일일지.” 이렇게 얘기할 정도로 팬이나 전문가들이 뭐라고 하든 이동현 본인은 김성근 감독을 존경한다는걸 드러냈다.[* 그냥 김성근에 대해 어느정도 좋게 얘기할수 있는거야 흔한거지만 아예 꼭 이걸 반드시 써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한 경우는 흔한게 아니다.] 이거때문인지 친 김성근은 이동현을 좋아하지만, 반 김성근 측에서는 이동현에게 실망했다던가, 결국 이동현도 김성근과 똑같은 노리타 부류일 뿐이었다, 절대 코치나 감독으로 봐서는 안된다며 매우 분개했다. [[이대수]]는 [[SK 와이번스]] 1기 시절 오버스로로 송구하지 않고 사이드암으로 송구한다는 이유로 찍혀[* 본인에 말에 의하면 당시 부상 때문에 오버로 던지기가 힘들었다고.]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시키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는 음해에 가깝고 이대수의 경우는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이 겹친 케이스다. 일단 첫 번째로 김경문 감독이 먼저 이대수를 원한 것. 나주환을 유격수로 써 보려다가 불안한 수비에 포기하고, 대신 수비가 뛰어난 선수를 원했는데 그 때 김경문 감독의 눈에 들어온 것이 이대수였던 것. 애초에 김성근이 아니라 김경문에게 필요한 선수로 찍혀서 트레이드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대수의 경우 당시 팀간 사인거래 의혹이 있었는데, 여기서 사인을 거래한 선수로 유력하게 지목되고 있어서 트레이드 대상으로 지목된 건 그 이유도 어느정도 지분을 차지한다는 의혹이 있다. 여튼 이대수는 감독에게 찍혀서 간 트레이드가 아니었고, 김성근 감독도 두산에서 맹활약하던 이대수를 보면서 흐뭇해했다고. 후일 시간이 흐른 후 이대수는 그런 루머에 대해 기사를 통해 본인이 강하게 부정했다.[[https://sports.naver.com/news?oid=096&aid=0000160421|한화 이대수는 정말 야신에게 밉보였나?]] 실제로 이대수는 이후 선수생활 은퇴할 때까지 김성근의 지도대로 오버핸드를 통해 강한 송구를 선보였다. 애초에 이대수는 포구가 안정적이지만 수비범위가 넓지 않다는 단점 역시 지녔었기에, 이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서는 오버스로에서 나오는 강한 송구가 반드시 필요했고 김성근의 지도는 옳았던 것. [[이진영]]은 데뷔를 김성근의 감독이 있던 쌍방울에서 했다. SK에서 FA신청을 하고 우선협상을 하던 시기에 김성근 감독에게 전화해서 FA 이적을 상담할 정도로 좋은 관계였다. 이진영의 말에 의하면 FA 우선협상 기간 내내 SK는 적은 금액을 제시하였으며 시장에 나가 평가받아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우선협상 기간이 끝나자마자 근처에서 대기를 하던 LG가 접근, 훨씬 많은 돈을 제시하였고 이에 김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보장액부터 10억 이상 차이 났으며, 김성근 감독은 그 말을 듣자 야구선수가 FA하기 얼마나 힘든지 안다며, 가치를 알아주는 곳으로 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LG 이적이후 SK 시절 1루수로 나온것에 대한 불만으로 1루 글러브를 태워버렸다라고 당시 기용에 대해 불편함을 표현했고, 김성근 감독에게 구타당한 이야기[* 언론 인터뷰중이라 인사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는데 나중에 찾아와 귀싸대기를 때렸다고...]도 직접 거론하는등 좋지 않은 사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은퇴할때 기억에 남는 감독으로 [[https://www.youtube.com/watch?v=T0myT5ngZBw|김성근 감독]]을 언급했고, 김성근이 SK를 떠난지 10년이 되가는 현재에도 왕조 시절 멤버들과 같이 김성근 감독을 모시고 식사 자리를 만드는 모습 등을 볼 때 사이는 괜찮아보인다.스톡킹에 출현하여 FA 당시 분위기를 설명하는 이진영을 보면 당시 환경변화에 두려움이 있었고 SK에 애착이 있었던 이진영은 내심 김성근 감독이 구단을 통하여 FA 액수를 맞춰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었던 것으로 보이나 김성근 감독과 전화통화로 LG 이적을 축하 한다는 답변을 듣고는 오히려 당황했었다고 한다. 금액적 문제만 아니었다면 이진영은 SK에 남고 싶어 했었다. [[임창용]] 또한 19세 해태 신인 시절, 2군에 있었을때 자율훈련을 하지 않고 맨날 놀러 다니자 불러 집에나 가라고 했다고 한다. 임창용이 찾아가 빌자 완고할 것만 같았던 김성근은 '나와 1년만 열심히 하자'며 자신을 만들어 줬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것.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 에이전트를 통해 칭찬을 하자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64&article_id=0000003859|과분한 말씀이라며 감사함을 표했다.]] [[강동우]]도 의외로 김성근 감독을 은사로 꼽는데, 그 이유가 쌍방울 감독 때 언더핸드 선수를 자주 내주는 덕에 신인이었던 자신이 플래툰으로 나갈수 있었다고... 이후 강동우는 큰 부상을 당하고 재활 중 삼성 2군 감독으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과 재회하게 되며, 자신의 타구에 맞은 동료 선수를 본 체 만 체 했다는 이유로 김성근 감독에 불호령을 듣고 크게 반성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출처 : '리더 김성근의 9회말 리더십(정철우 저, 비전코리아)' 144페이지.] SBS 야구 프로그램 야구본색에서 나온 전 [[쌍방울 레이더스]] 외야수이자 [[성균관대학교]] 야구부 감독 [[이연수]]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을 거쳐간 제자들이 한 명 한 명 무엇을 하고 사는지 거의 다 알고 있다고 한다. [[2002년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제자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회갑연을 열어 주었던 것으로 보아 많은 제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 하다.[* 회갑연의 주최를 주도했던 두 제자가 바로 [[김기태(1969)|김기태]] [[KIA 타이거즈]] 감독과 [[이연수]] 성균관대 감독이다. 특히 이연수 감독은 선수 시절에 김성근 감독이 두 번씩이나 방출시켜서 인연이 좋지 못했지만 김성근이 이연수를 프런트로 거둬들였고 2000년대에 지도자로 전향하면서 김성근 감독과 사이가 좋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야신 시절 이렇게 미화된 증언과 달리 김성근은 정작 현직 원더스 선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 한화 이글스 시절에도 [[김응룡/2013년|선수단 파악이 제대로 안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잠시 코치일을 해서 그런지 이쪽 선수 중에서도 몇 명이 김성근과 인맥이 있다. 대표적으로 [[오마츠 쇼이츠]]와 타케하라 나오타카[* 좌투우타 거포 유망주였으나 롯데, 오릭스, 세이부를 거치면서 터지지 못하고 대타 요원으로 커리어를 마쳤다.]. 이 둘은 2006년 12월에는 아예 김성근을 만나러 한국에 온 적도 있고, 몇년 후인 2009년 12월 김성근이 스프링캠프 차 고치에 있을 때에는 고치에서 생일축하를 하러 김성근을 직접 찾아왔다. 당시 기준으로 김성근이 한국에 있을 때도 연락을 하는 사이였다고. 지금도 연락이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2014년 후쿠오카 페이페이돔에 야구를 보러 간 김성근이 원정팀 선수였던 오마츠를 만났다는 기사가 있고, 2019년에 오마츠가 은퇴를 할 때 한 인터뷰에서도 김성근의 코칭 얘기를 한 걸 보면 오마츠 쇼이츠의 경우는 지금까지도 김성근을 은사로 여기는 듯. 이외에도 현재 야구해설가 겸 유튜버로 유명한 당시 주전포수 [[사토자키 토모야]]와도 여전히 만나면 인사를 나누는 사이로 보인다. 그러나 이쪽에서도 [[니시오카 츠요시]]의 얼굴을 때렸다는 등 좋지 못한 얘기도 있어서...[* 물론 일본도 감독이 선수 때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 다른 감독들보다 특별히 나빴다는 건 아니다. 김성근은 당장 [[호시노 센이치]]랑 비교하면 양반인 수준.] 놀랍게도 살려조 최대 피해자 송창식, 심수창도 김성근을 좋아하는 걸로 나왔으며 한화의 영구결번이 된 레전드 [[김태균]]도 안도하고 있던 자신을 일깨워주신 분이자 경기 밖에서는 따뜻하신 분이라고 이야기하며 송창식의 등판을 혹사라하는데 혹사는 싫어하는데도 올려야 혹사가 아니냐?[* 이는 어쩌면 김태균이 혹사의 개념을 모를 확률이 클 수 있다. 혹사는 혹독하게 일을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등판한 송창식은 이미 혹사가 맞으며 본인이 좋아했으니까 혹사가 아니다는 김태균의 주장은 사전적 의미와는 다르다.]며 적극적으로 옹호하였다. 그러나 하술된 장성호의 발언처럼 송창식은 버거씨병처럼 굴곡진 야구 인생도 있었고 야구에 1경기라도 더 나오는 것을 좋아했기에 김성근을 좋아하는 것이고 심수창의 경우는 김성근 덕분에 FA를 통해 '''총 4년 13억'''에 계약하면서 연봉 5500만원에서 연봉 2억 5천만원으로 억대연봉 선수로 신분상승 했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기용해줬기에 심수창은 그야말로 김성근은 최고의 감독이다. 그 외에도 거쳐간 대부분의 선수들이 존경한다고 말하는 감독. 확실히 연습량도 엄청나고 혹사 역시 부정할 수 없지만, 선수들은 혹사를 좋아한다. 장성호의 말대로, '''시합에 안 나가면 어깨를 보존한 채 그냥 집에 가게 된다. 기회를 못 받고 40까지 선수생활 같지도 않게 하며 2군에서 썩느니, 혹사를 당할지언정 1군에서 잠깐이라도 불꽃같은 커리어를 보내고 싶어하는 것이 프로 선수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혹사란 기본적으로 시합에 많이 내보내는 것인데 운동선수는 그 운동을 미치도록 좋아하니까 직업으로까지 삼은 것이라 기본적으로 당장 죽을 것 같지 않은 한 시합을 한 경기라도 더 많이 뛰고 싶어한다. 돈 벌려고 가기 싫은 회사 억지로 출근하는 일반인과는 일을 대하는 입장이 다른 것. 또한 시합에 많이 내보낸다는 것은 자신을 그만큼 신뢰한다는 것이라 나를 신뢰하고 기회를 많이 주는 사람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장성호의 명언대로 최일선 선수들 본인들에게는 최고의 명장은 '나를 써주는 감독' 인 것이다. 또한 인간적으로도 위의 박철순의 사례를 비롯, 쌍방울 시절 자기 감독 월급을 쪼개서 형편 어려운 선수들에게 용돈을 줬다는 이야기나 연습을 시킬 때도 나이 70이 넘은 노감독이 직접 펑고배트로 노크를 때려주며 선수들과 함께 구르고, 선수를 2군으로 보낼 때도 어디가 부족해서 2군을 보내는지 등 직접 면담을 거친 후에 보내는 등 선수를 빡세게 많이 굴리는 만큼 인간적으로도 대했기에 사이가 좋은 선수들에게는 확실히 좋은 평가를 듣는 감독이다. [[김재현(1975)|김재현]]은 [[LG 트윈스]] 시절의 관계도 있고 하여 표면적인 관계는 양호한 편이었으나 2007년에는 [[이재원(1988)|이재원]]과의 플래툰 기용에 대하여 다소 불만을 품고 부진까지 겹쳐서 은퇴까지 고려했다. 이는 은퇴 이후 2012년에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김성근 감독에게 직접 트레이드를 요청했을 정도로 심각한 불화가 있었다는 것을 본인이 확언한 이야기. 그러나 시즌 타율 .196을 기록할 정도로 극도로 부진했음에도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대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받고 2009년에는 주장도 맡고 하면서 김성근 감독의 조언으로 은퇴 후 진로를 변경할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회복하며 2014년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아 [[한화 이글스]] 코치로 부임하였다. 하지만 2016 시즌 종료 후 김성근의 유임에도 사임하였다.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의 트레이드 마크인 장발과 수염을 김성근이 자를 것을 명령했으나 이상훈이 절대 못자르겠다고 버티며 불화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워낙 출중한 실력의 선수였기 때문에 결국 김성근이 굽히면서 이상훈은 "태도가 바르고"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그냥 넘어 가 준다고 했다.[* 김성근 감독은 장발, 수염 자르고 오라고 이상훈에게 명령했는데 이상훈은 아예 김성근 감독과 담판을 지어서 절대 못 자르겠다고 버티니까 "그럼 너 하나만 예외로 칠수는 없으니까 선수들 전원에게 두발자유를 주겠다."라고 ~~김성근 답지않게~~ 쿨하게 넘어갔다. 약 2년전 이광은 시절 [[최향남]] 염색파동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 다만 나중에 고양 원더스 코치로 들어갈 때는 장발과 수염을 정리했다. 김성근이 "선수 시절은 그럴 수 있어도 다른 제자들을 지도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용납할 수 없다." 고 단호히 얘기했다고 한다. 이상훈 스스로도 납득해서 자진해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하고 수염은 완전히 깎았다. 여담으로, 프로에서 사제지간은 없으나 [[신일고등학교]] 감독 시절 가르쳤던 제자가 훗날 [[SK 와이번스]] 에서 감독 임기중 만난 단장 [[민경삼]]이다. 옛 제자를 상사로 만난 셈. 민경삼과는 가족끼리도 긴밀한 사이였고, 훗날 민경삼이 직접 2006년 김성근을 SK의 감독으로 선임했다. 함께 왕조를 구축하기도 했으나, 김성근 감독의 2011시즌 중 언론 플레이와 현장 및 프런트간의 내홍으로 시즌 후 퇴진을 선언하자 갈등을 우려해 민경삼이 김성근을 경질했다. 이후 사이가 험악해져 절연했으나, 2013년 민경삼 단장의 외아들 고 민선홍 군의 임종을 앞두고 민경삼의 아내가 김성근에게 연락을 했고, 김성근이 늦은 밤 그 즉시 병실로 찾아와 셋이 2년만에 병상에서 조우해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이후 민경삼과 화해하고 이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애증이 교차하던 제자였으나 [[참척]]의 변을 앞둔 제자를 보고 인간적인 감정을 우선해 극적으로 화해한 경우. [[https://n.news.naver.com/sports/kbaseball/article/380/0000000954|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